질의 & 답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 미술관

페이지 정보

작성자 Narcisse 댓글 0건 조회 168회 작성일 25-10-09 07:08

본문

우리나라에서 장수출장샵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가게 되면 예전에는 무조건, 요즘은 대부분 프랑크푸르트로 가게 된다. 독일의 수도가 베를린 (통일 전 서독의 수도는 본에 있었지만)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한국인의 독일 중심은 아무래도 프랑크푸르트이다. 우리나라에서 독일로 가는 비행기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국기업의 독일 사무소들은 대부분 프랑크푸르트에 있고, 아무튼 우리는 독일할 때 독일의 수도도 아니고, 독일의 중심부도 아닌 남부에 치우쳐있는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프랑크푸르트에 대해 잘 모르는 사실도 몇가지 있다. 독일에 프랑크푸르트라는 도시가 하나 더 있다. 폴란드 국경 쪽, 옛 동독 영역에 프랑크푸르트 안 데 오데르 Frankfurt an der Oder라는 작지 않은 도시가 하나 더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프랑크푸르트는 정식 이름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Frankfurt am Main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라고 한다. 우리는 보통 그것도 모르고 있다.​프랑크푸르트의 마인강변 강둑에 자리하고 있는 슈테델 미술관의 후변과 전면 전경​아무튼 우리가 아는 그 프랑크푸르트에는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큰 미술관이 하나 있다. 바로 슈테델미술관 Stadel Museum 이다. 프랑크푸르트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는 이름을 가진 이 미술관은 규모도 크고, 나름 유명한 작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대형 미술관이다. 그리고 이 슈테델이라는 이름은 프랑크푸르트의 미술관이 있게 해준 기증자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1816년 사망한 프랑크푸르트에 살던 상인이자 은행가인 요한 프리드리히 슈테델이 자기가 모은 그림 컬렉션과 자기 집, 그리고 엄청난 돈을 남겨 미술관을 만들도록 한 것이 바로 슈테델미술관의 시작이다.​이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미술관을 위한 유산 상속의 모범과 같은 사례를 남겼다. 그는 미술품만 남긴 것이 아니라, 미술관으로 쓸 수도 있는 자신의 저택도 남겼고, 미술품을 계속 사들일 수 있도록 거액의 자산도 남겼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유연한 조건을 미술관에 장수출장샵 남겼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서는 자신이 남긴 컬렉션을 포함하여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팔아도 된다고 했단다. 쓸데없는 그림을 자신이 남겼다는 이유 때문에 계속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림을 팔아서 더 좋은 그림을 살 수 있도록 조건을 달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 그는 미술관에서 미술학교도 설립하여 운영하도록 했다. 미술관과 미술학교를 한꺼번에 남긴 셈이다. 다른 컬렉션을 기증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컬렉션이 무조건 보존이 되어야 한다든지, 모든 컬렉션이 항시 전시가 되어야 한다던지,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든지 하는 조건들을 남기는 것에 비해서는 무척 효율적이고도 관대한 조건을 남긴 셈이다. 거기에 미술품을 계속 컬렉션할 수 있을만큼의 거액까지 남겼다.​Jan van Eyck, 얀 반 에이크, Lucca Madonna, 루카 마돈나, 1437, 50x66cmRogier van der Weyden, 로히에르 판 데르 베이던, Medici Madonna, 메디치 마돈나, 1453-60, 38x53cmHieronymus Bosch, 히에로니무스 보스, Ecce Homo, 에케 호모, 이 사람을 보라, 1490, 61x71cmLucas Cranach the Elder, 루카스 크라나흐 1세, Venus, 비너스, 1532, 25x38cmSandro Botticelli, 보티첼리, 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 as Nymph or Idealised Portrait of a Lady, 님프로 분장한 시모네타 베스푸치 또는 이상화된 여인의 초상, 1480, 54x81cmBartolomeo Veneto, 바르톨로메오 베네토, Idealised Portrait of a Courtesan as Flora, 플로라로 분장한 이상화된 창부의 초상 또는 루크레티아 보르지아, 1520, 35x44cmHans Holbein th Younger, 한스 홀바인 2세, Portrait of Simon George of Cornwall, 콘월의 시몬 조지 초상화, 1535, 31x31cmRaffaello, 라파엘로, Portrait of Pope Julius II, 율리오 2세 교황의 초상화, 1511-12, 79x106cm​하지만 이 사람의 유언 덕분에 독일에서는 아주 유명한 소송이 발생을 한다. 어쩌면 이 사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어떤 고약하게 똑똑한 변호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수출장샵 그의 거대한 컬렉션과 거금의 유증 때문에 프랑크푸르트 전체가 흥분하고 있던 1817년, 슈테델의 먼 친척 두 명이 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온다. 슈테델의 유언은 무효이고, 그의 유산은 자신들이 물려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이었다. 이들, 또는 이들 변호사의 논리는 이러했다. 슈테델이 자신의 유산을 남긴 미술관과 미술학교는 슈테델이 죽어 유산을 상속한 순간,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재산을 상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슈테델이 죽는 순간, 재산상속의 권리를 갖는 것은 먼 친척이기는 하지만 이 소송을 건 두 여인이다. 사실 그녀들의 주장은 당시 법체계에서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소송의 파장은 컸고, 법원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재판은 10년이상 길어졌다. 결국 이 두 먼 친척은 슈테델이 남긴 170만 길더 상당의 현금 유산 중 30만 길더를 받아 가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된다. 11년간 걸린 소송 비용은 변호사들이 받아갔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미술관 건립과 미술학교의 설립은 중단되어 있었었다. 인류의 관점에서 보통 큰 손실이 아니었다. 결국 관련 법들이 개정되었고, 제도가 정비된다. 그리고 유산을 남기는 사람들은 좀 더 조심을 하게 된다.​이렇게 어렵사리 미술관이 시작되고, 미술학교 Stadelschule 역시 시작된다. 최초의 미술관은 슈테델이 남긴 저택에 차려졌다. 미술관 경영진은 슈테델이 남긴 컬렉션 중 미술관 전시에 적합치 않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은 처분을 하고, 체계적으로 컬렉션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미술관에서 처음 사들인 작품 가운데는 보티첼리의 유명한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초상이 있다. 세모네타는 르네상스 초기 메디치 가문이 다스리는 피렌체 최고의 미녀였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프라마베라의 모델이었다. 컬렉션이 확충되면서, 1878년 현재의 위치인 마인 강변에 미술관용 새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을 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 슈테델 미술관에 가면, 보고 있는 본관 건물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는 슈테델미술관의 운영과 컬렉션 확충에 장수출장샵 도움을 주기 위해 시 컬렉션을 별도로 만들어 미술관과 통합운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시 재정이 미술관 운영과 컬렉션 확충에 직접 투입될 수 있게 된다. 거기에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슈테델 미술관 협회를 결성한다. 프랑크푸르트 유력인사들의 재정 후원은 협회를 통해 전달이 되고, 재정이 확충된 미술관은 현대와 당대 미술까지 더해 컬렉션을 확충하기 시작한다.​Peter Paul Rubens, 루벤스, Mystic Marriage of St Catherine (Colour Sketch for the Altarpiece of the Church of the Augustinian Fathers in Antwerp), 카트리나 성인의 신비한 결혼 (안트베르펜 아우구스티우구스티누스 수도원 교회 제단화를 위한 컬러 스케치), 1628, 49x64cmRembrandt Harmensz van Rijn, 렘브란트, The Blinding of Samson, 실명을 당하는 삼손, 1636, 305x219cmAdriaen Brouwer, 아드리안 브라우어, The Bitter Potion, 쓴 약, 1636, 36x47cmJohannes Vermeer, 베르메르, 페이메이르, The Geographer, 지리학자, 1669, 45x52cmClaude Lorrain, 클로드 로랭, Landscape with Christ Appearing to St Mary Magdalene or Noli me tangere,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있는 풍경 또는 나를 만지지 마라, 1681, 141x85cmJean Antoine Watteau, 장 앙투안 와투 또는 바투, The Embarkation for Cythera, 키테라 섬으로의 출항 또는 사랑의 섬으로의 순례, 1709-10, 56x46cm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요한 하인리히 티쉬바인, Goethe in the Roman Campagna, 로마 캄파냐의 괴테, 1787, 210x166cm​그리고 나치의 시대, 거기에 2차 세계대전이 찾아온다. 현대미술을 혐오하고, 고전미술만을 좋아하는 나치는 "퇴폐미술 Degenerate Art" 탄압이라는 명목으로, 인상파 이래의 현대미술, 특히 독일 표현주의 미술을 미술관에서 내리고, 빼앗아가는 등 만행을 저질렀었다. 우리는 앞서 에센에 있는 폴크방 미술관 같은 중소도시의 크지 않은 미술관에서 1200여점에 달하는 미술품이 압류되었던 사실을 본 적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미술관 역시 똑같은 비운을 당한다. 장수출장샵 하지만 미술관 측에서 엄살을 부리는 것과는 달리, 슈테델 미술관은 심각한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들이 빼앗긴 미술품은 유화를 기준으로 하면 백여점 미만인 것 같아 보인다. 폴크방처럼 훨씬 규모가 작은 미술관의 1200여점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마 그 비결은 미술관 경연진 때문인 것 같다. 이들은 어느 면에서 나치의 미술정책에 협력을 했었다. 나치는 미술관에서는 퇴폐미술을 탄압했지만, 유대인 출신 미술애호가들로부터는 그림을 그냥 빼았았다. 슈테델 미술관의 경영진들은 이런 유대인 압류 미술품 중에서 쓸만한 물건을 골라내는 일을 지휘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물건 중 일부를 미술관에서 구매했고, 점령지 프랑스로 출장을 가서 작품을 (거의 거저의 가격으로) 사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는 그 댓가로 미술관의 미술품들을 보호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들 경영진들은 나치 패망 이후에도 나치 협력자 취급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1972년까지 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로 나치와 무관하게 장수를 했다. 우리나라에도 친일파 논란이 있지만, 그렇게 철저히 청산이 이루어졌다는 나치 부역자에 대한 시각도 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미술관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기여를 한 사람들이었다. ​2차대전 중 연합국의 폭격으로 미술관 건물은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그래도 미술품들은 미리 대피를 시켜 프랑크푸르트 시내와 인근에 잘 숨겨두었었기 때문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고 한다. 연합군의 프랑크푸르트 점령 이후, 연합군측의 유명한 모뉴먼츠맨 부대가 들이닥쳐 나치 약탈 미술품 가운데 미술관에서 구입했던 작품들을 선별하여 압류를 하였고,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아무튼 1963년쯤, 전후 20여년이 지나서는 건물서부터 컬렉션까지 나치의 광기와 전쟁의 참화가 모두 복구되고, 미술관은 정상화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는 애초에 동독쪽과는 제법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동서독 분단과 냉전과는 큰 문제가 없었다.​Gustave Courbet, 귀스타브 쿠르베, The Wave, 파도, 1869-70, 92x66cmClaude Monet, 모네, The 장수출장샵 Luncheon, 점심식사 또는 오찬, 1868-69, 152x232cmEdgar Degas, 드가, Orchestra Musicians, 오케스트라 연주자, 1872, 49x64cmEdouard Manet, 마네, A Game of Croquet, 크로켓 경기 또는 놀이 또는 게임, 1873, 106x72cmAuguste Penoir, 르누아르, After the Luncheon, 점심 식사 후, 1879, 81x101cmPaul Cezanne, 세잔, Landscape. Road with Trees in Rocky Mountains, 풍경화 또는 바위 산의 나무 사이 길, 1870-71, 65x54cmArnold Bocklin, 아르놀트 뵈클린, Villa by the Sea, 해변가의 저택 또는 별장, 1871-74, 154x108cmMax Liebermann, 막스 리베르만, The Courtyard of the Orphanage in Amsterdam, 암스테르담 고아원의 중정, 1881, 108x79cm​슈테델 미술관은 1999년 별관을 신축하면서, 이곳을 기획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2012년에는 지하공간을 신축하여 현대미술 전시공간으로 사용하게 된다. 가장 최근에는 루프탑 테라스를 완공하여 개관했다는 소식도 있었다.​시기 구분을 통해 미술관을 몇개로 나누어 놓은 뮌헨과 베를린, 드레스덴의 미술관들과는 달리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 미술관은 14세기부터 현대와 당대 미술까지 7세기에 달하는 모든 미술 소장품을 한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다른 미술관에 비해 규모가 작다는 의미도 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곳에서 모든 작품을 볼 수 있다는 편리성도 있다는 뜻이다.​Ernst Ludwig KIrchner,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Standing Nude with Hat, 모자를 쓰고 있는 서 있는 누드, 1910(1920년 재작업), 65x196cmErnst Ludwig Kirchner,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Vaudeville Theatre (English Dancing Couple), Varieté: Englisches Tanzpaar, 보드빌 극장의 춤추는 영국 커플, 1909, 120x151cmAugust Macke, 아우구스트 마케, Little Walter's Toys, 꼬마 발터의 장난감, 1912, 60x50cmFranz Marc, 프란츠 마르크, Dog Lying in the Snow, 눈 위에 누워있는 개, 1911, 105x63cmEdvard Munch, 뭉크, Jealousy, 질투, 1913, 130x85cmLotte Laserstein, 로테 라세르슈타인, Russian Girl with Compact, 콤팩트를 들고 있는 장수출장샵 러시아 소녀, 1928, 41x32cmPaula Modersohn-Becker, 파울라 모더존 베커, Head of a Girl, 소녀의 두상 또는 머리, 1906, 21x25cmLovis Corinth, 로비스 코린트, Carmencita, Portrait of Charlotte Berend-Corinth in Spanish Dress, 카르멘시타 또는 스페인식 드레스를 입은 샬로트 베렌트-코린트의 초상, 1924, 90x130cmMax Beckmann, 막스 베크만, Self portrait with Champagne Glass, 샴페인 잔을 들고 있는 자화상, 1919, 56x65cmOtto Dix, 오토 딕스, The Artist's Family, 화가의 가족, 1927, 50x80cmPaul Klee, 파울 클레, The Lamb, 양, 1920, 41x32cm​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유럽은 층을 부르는 방식이 우리와는 좀 다르다. 우리 1층에 해당하는 지상과 연결된 층을 유럽에서는 0층, 지층, Ground Floor라고 부른다. 따라서 우리 2층이, 유럽의 1층이고, 우리 3층은 유럽의 2층이 된다. 슈테델 미술관은 지상 3개층과 지하층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우리 1층에 해당하는 지층에는 매표소와 뮤지엄샵, 카페 등 필요시설 이외에 한쪽에는 인쇄물 컬렉션 (판화와 드로잉 포함)이, 다른 한쪽에는 도서관과 연구실이 위치해 있다고 한다. 우리 2층인 1층에는 고전거장 (1300-1800)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현대미술 (1800-1945)이 전시되어 있다 (통상 현대라고 하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의미하겠지만, 미술에서의 현대 Modern는 20세기 전반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미술에서는 당대 Contemporary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지하층에는 당대미술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유럽식 1층 (우리의 2층)에서 연결되는 별관에서는 기획전이나 특별전이 개최된다.​다른 많은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슈테델 미술관도 월요일은 휴관한다. 미술관이 오픈하는 것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이다. 개관시간은 10시부터 6시까지이고, 목요일에는 9시까지 연장 개관을 한다. 미술관의 입장료는 16유로이다. 특이하게도 주말과 명절에는 18유로를 받는다고 한다. 대신 화요일 3시 이후에 입장을 하면 9유로의 할인된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슈테델에는 유명한 화가들의 유명한 그림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장수출장샵 독일이 자랑하는 르네상스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와 한스 홀바인의 조각은 미술관 입구의 양쪽에 서 있다. 미술관에도 이 두 작가의 유명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부터 따진다면 뒤러, 홀바인은 물론 히에로니무스 보스, 얀 반 에이크, 루카스 크라나흐,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보티첼리, 라파엘로의 그림들이 있고, 루벤스, 렘브란트, 베르메르를 비롯한 네덜란드, 플랑드르 거장들의 작품들도 있다. 클로드 로랭과 니콜라 푸생, 카날레토, 와토 등 바로크, 로코코 작품도 있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 등 프랑스 인상파, 키르히너, 마케 등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 작품도 당연히 있다. 심지어 뭉크도 있고, 피카소와 마티스, 샤갈, 파울 클레 등도 구색을 갖추어 놓았다. ​따지고 보면 독일 도시 중 프랑크푸르트를 제일 많이 왔다갔다 했던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 슈테델미술관을 들른 기억이 없다. 하긴 프랑크푸르트는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만 했지, 실제 구경을 했던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기는 하다. 다음에 프랑크 푸르트에 들른다면 꼭 슈테델 미술관을 들르고 싶다. 머지 않은 미래에 그랬으면 좋겠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ISCHUS Co. Ltd.

Representation : Jongmin Kang

Address : 8-108, 156 Gajeongbuk-ro, Yuseong-gu, Daejeon Metropolitan City, 34103

Company Registration Number : 527-86-01094

Main Phone : +82-42-863-7063

Phone : +82-10-8537-7063

Email: jongmin.kaang@gmail.com

Copyright © ISCHUS Co. Ltd. All rights reserved.